1. 에드가 앨런 포우
  2. 셜록 홈즈
  3. 아가사 크리스티
  4. 기암성
  5. 기나긴 이별
  6. 말타의 매
  7. 환상의 여인
  8. 벤슨 살인사건

본명은 Agatha Mary Clarissa Miller Christie Mallowan.

영국 데번주(州)의 토케이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의 세 아이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 코넌 도일의 작품을 즐겨 읽었으며, 이야기 쓰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해 그녀는 아치볼드 크리스티와 결혼한다. 남편이 영국군 항공대 대령으로 근무하고 있는 동안, 그녀는 고향인 토케이에서 의용구조분견대의 간호사로 근무했었고 이때 독약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고 한다. 그녀는 군(軍) 병원의 외과병동에 배치됐고, 거기서 2년간을 보냈다. 간호사 복무 후에는 병원 약국에서 약사로 일했다. 그녀는 약사로 있었던 해에 시를 썼는데, 그 시들은 《꿈길》이란 시집으로 발간됐다.

독약은 크리스티의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선 작품에 독극물 관련 지식을 적극 활용했다. 크리스티의 작품에 독살사건이 자주 나오고 주인공이 해박한 지식으로 독살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녀는 독약에 대한 정확한 지식으로 “(내 작품에 나오는) 수십 명의 나의 희생자들은 깨끗하고 더럽지 않은 방식으로 죽을 수 있게 되었다” 고 말했다. 또 나중에 첫 번째 남편이 바람을 피웠을 때 크리스티는 남편을 독살하려고 했다는 의혹을 받게 된다.

1차대전 중이던 1916년 크리스티는 언니와 입씨름을 벌인 것을 계기로 첫 작품인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을 썼는데, 이것은 6개 출판사에서 거절당하며 전전하다가 1920년 런던의 보들리 헤드 출판사에서 겨우 출판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상업성을 인정받지 못해 4년간 출간을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16년에 전쟁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고 희생자는 많았다. 크리스티는 장시간 병원에서 일하다가 짧은 휴가를 받았다. 크리스티는 언니와 추리소설을 쓰는 것이 쉬운지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으나, 그들이 읽은 유일한 추리소설은 셜록 홈즈와 가스통 르루의 《노란 방의 비밀》밖에 없었다. “너는 내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소설을 쓸 수 없을 거야” 라고 그녀의 언니는 장담했다. 이에 크리스티는 “기다려봐. 나는 의학에 대한 아이디어를 머릿속에 갖고 있으니까” 라고 대꾸했다.

어머니 밀러 부인이 “책을 쓸 생각이면 다트무어에라도 가서 머무는 것이 어떠냐” 고 조언해서 크리스티는 3주일 동안 다트무어의 헤이토르에 있는 무얼랜드 호텔에서 지냈다. 처음 두 주일 동안 그녀는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을 거의 완성했다. 탐정 엘큘 포와로가 복잡한 독살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한다는 내용이었다. 포와로를 벨기에인으로 설정한 것은 시대적인 영감에 의한 것이었다. 그녀의 고향인 토케이는 그 당시 전쟁을 피해 도망친 벨기에 난민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크리스티는 1926년 자타가 인정하는 걸작인 여섯 번째 장편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발표해 추리소설계에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크리스티 여사를 추리소설계의 최고봉에 올려놓았으며, 또한 ‘탐정 클럽의 규칙 위반’이라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탐정 클럽의 규칙’ 이란 무엇인가? ‘탐정 클럽’ 은 영국 추리작가들의 모임이다. ‘브라운 신부’ 의 작가 G. K 체스터튼을 초대 회장으로 해서 활발한 모임을 가졌는데, 크리스티도 1958년부터 1976년까지 회장직을 맡았다. 이 ‘탐정 클럽’은 공정한 게임을 규칙으로 삼고 있다. 결론을 유도해내기 위한 방법이 작품에서 언급되지 않은 비밀스러운 것이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전혀 알려지지 않은 독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작품의 전반부나 혹은 다른 방법으로 언급해서 독자들이 알고 있도록 해야 한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출간되자마자 선풍적 인기를 끌었지만, 그녀는 여러 추리작가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그녀는 어겼다. 그녀는 탐정 클럽의 규칙을 위반했다. 그녀는 공정하게 글을 쓰지 않았다’ 는 것이 신문 기사의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크리스티는 자신이 클럽의 규칙을 깨뜨렸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비난하는 ‘언급되지 않은 단서’ 는 잘못된 말을 쓴 것이 아니라 단지 설명이 결여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살인을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속임수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설명이 결여된 것은 독자들이 충분히 의심해 볼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공정성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에서 문제가 된 ‘언급되지 않은 단서’ 는 독자에게 의도적으로 빈 공간을 보여줌으로써 그 자체로 나름대로의 단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무렵 크리스티는 불륜에 빠진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요구받게 된다.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남편에게 실망감과 당혹감을 느끼게 됐고, 1926년 12월 3일 유명한 ‘크리스티 실종 사건’ 이 발생한다. 그녀를 찾기 위해 수백 명의 경관과 15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동원됐다. 3주일 후에 작은 호텔에서 발견된 크리스티는 경찰에게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 말했다. 그리고 그 후 그 사건에 대해서 다시는 언급하지 않았다. 1928년 4월 크리스티는 결국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한다.

1930년 크리스티는 여행에 나선다. 메소포타미아에서 고고학자 맥스 맬로원을 만난다. 크리스티는 맬로원과 1930년 9월 에딘버그에서 결혼하게 된다. 이때 크리스티는 40세이고, 맬로원은 26세였으니 무려 l4년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행복했다. 맬로원은 자신의 연구 결과인 ‘님러드와 그 유적’ 을 아내에게 헌정했으며, 크리스티도 자서전인 《당신의 인생을 돌려주세요》에서 남편과의 즐거운 생활을 밝혔다. 그러나 크리스티는 재혼 후에도 전 남편의 성(姓)인 크리스티를 필명으로 계속 사용했다. 전 남편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이미 크리스티라는 이름이 너무 유명 브랜드였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맬로원과의 재혼은 크리스티에게 안정된 생활을 가져다주었다. 그 결과 크리스티가 l930년대에 발표한 작품은 대부분 걸작이라고 인정받고 있다. 행복한 결혼과 더불어 크리스티의 추리적 천재성이 폭발한 셈이다.

크리스티는 노익장(老益壯)을 발휘해 말년까지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계속한다. 그녀는 사망 1년 전인 1975년 《커튼 (Curtain)》이라는 마지막 작품을 발표하여 세계 독서계에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노작가가 신작을 발표한 것 자체도 화제가 될 만했지만, 그녀는 이 작품에서 자신이 창조한 탐정 에르큘 포와로를 죽게 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단한 기록까지 발생했다. 그 해 뉴욕타임즈 8월 6일자 1면에 ‘유명한 벨기에인 에르큘 포와로 별세’ 라는 부고 기사가 실렸던 것이다. 소설 속의 인물이 세계 최고의 권위지에 실제 인물인 양 부고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에르큘 포와로가 얼마나 유명한 인물이 되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976년 크리스티가 86세를 일기로 타계하자 전세계에서 추모의 물결이 일었다. <쥐덫>의 제작자인 피터 손더스는 “크리스티는 버킹엄궁(宮), 국회의사당, 런던탑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존재” 라고 경의를 표했다.